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이토록 우울한, / 이규리

폴래폴래 2010. 12. 31. 18:45

 

 

 

 

 

 이토록 우울한,

 

                                 - 이규리

 

 

 

 

 천강성이란 별은 길방을 비추기 위해 흉방에 위치한다는데

 새는 모습은 가리고 부지런히 노래를 보내는데

 

 마당에 나가 그저 올해 가을은……이라고 중얼거리지

 

 가을이, 죽을 것 같은 가을이

 하루종일 쳐들어와

 죽지 않기 위해 나는 물을 끊이지

 물을 끊이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줄 알았는데 영원히 오늘만 있어

 산사나무는 나를 보고 나는 서어나무를 보고

 마당을 서성이며 그저 가을이야 중얼거리지

 

 단풍이, 절명할 듯 붉은 단풍이

 하루종일 쳐들어와

 죽지 않기 위해 기도를 하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도록 기도를 하지

 

 적송도 죽을 때는 먼저 붉은 빛이 사라진다는데

 평생 입었던 덧옷을 벗어놓고 간다는데

 

 마당에 나가 그저 올해 가을은……이라고 중얼거리지

 

 

 

 

 

  『현대시학』2011년 1월호

 

 

 

 

 

  -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앤디 워홀의 생각><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