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빈 의자 / 박서영

폴래폴래 2010. 12. 13. 10:57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빈 의자

 

                             - 박서영

 

 

 

 식은 곰탕에 숟가락을 푹 꽂는데 파문이 인다

 묻혀있던 뼈 하나 불쑥 드러난다

 

 숟가락과 뼈가 만난 자리엔 심장이 뛰었던 전생이 있다

 하얗게 우려낸 국물 속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는 누군가의 심장

 

 순간 뚝배기 속을 가득 채우는 뼈의 그래프들

 처음부터 죽은 짐승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신과 함께 오랜만에

 한 끼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을 뿐

 

 결별의 저녁에 몰려오는 뼈의 문장들

 한때 우리는 심장의 범람으로 괴로워했고

 그릇 귀퉁이에서 살짝 떨어져나간 슬픔을 보았고

 

 당신과 마주앉아 나는 사각사각 뼈를 깎는다

 숨 멎어버린 것들로 빚어진 당신

 입술에 노랑나비의 퍼덕거림 따위를 달고 있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 데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

 

 당신과 마주앉아 식어빠진 곰탕을 먹는다

 나는 알아듣는 척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고

 모든 상상과 불멸은 뼈에 달라붙은 몇 점의 살덩이처럼

 마음에 기록된다

 

 

 

 

 『서정시학』2010년 겨울호

 

 

 

 

  - 1995년『현대시학』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