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호주머니 속 악어 / 강인한

폴래폴래 2010. 11. 23. 11:13

 

 

 사진:네이버포토

 

 

 

 

  호주머니 속 악어

 

                                          - 강인한

 

 

 

 내 호주머니에 악어가 산다

 

 볕 좋은 날 호주머니를 까뒤집고 탈탈 떨면

 있다

 구석으로 구석으로 숨던 땀나는 시간과

 병든 사람의 기억처럼 헐떡거리던 섬모와

 참을 수 없는 것들이 그리워

 실실이 빠져나온 담뱃가루 속에

 

 그 속에 있다

 추분 가까운 어느 가을날

 호주머니를 떨어내다가, 공기 속으로 떨어져 나가는

 은빛 빛나는 것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차마 꺼내기 어려운 고백의 첫 발음인지

 몰라, 숨기고 싶은

 추한 욕망의 한 자락인지 몰라

 악어의 벌린 입 속에, 사내는

 제 손을 넣었다가 한참 만에 꺼낸다

 악어의 벌린 입 속에 이번에는

 제 머리를 넣었다가 한참 만에 꺼낸다

 어쩌면 사내의 위험한 저 행동의 끝에는

 피 묻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예비되어 있을 것

 

 내가 그대에게 결정적인 무슨 말을 하고 싶을 때

 머뭇거리는 입술이 첫 음절에 매달려 목마른

 호주머니를 뒤질 때

 악어가 덥석 내 손목을 문다.

 

 

 

 

 시집『입술』시학 2009

 

 

 

 

 

 -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