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열차가 지나가는 배경 / 강인한
폴래폴래
2010. 11. 22. 12:26
열차가 지나가는 배경
- 강인한
벚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 그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지나간 청춘처럼 등 뒤로 열차가 지나갔다
벚나무 가지에는 잘 익은 바람이 찰랑거리고
바람들은 여기저기 작은 파문을 일으켜 잎을 떨구고
여름 가고 가을이 갔다
벚나무 아래
벚나무의 그림자처럼 그가 서 있었다
한 떼의 소란스런 눈보라가 스쳐 가고
이른 봄 파아란 강물이 벚나무에서 흘러나왔다
벚나무에서 나온 강물은
그 일대의 쓸쓸한 배경을 적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강 건너로
쓸쓸한 배경처럼 청춘이 지나갔다 어느 날은
비를 맞으며 벚나무 아래 강둑에 그가 서 있었다
벚꽃이 피고 파아란 강물 위로 문득
새가 날아올랐다 눈이 예쁜 작은 새 한 마리
벚꽃 흰 그늘에 다리 오그려 쉬고 있었다
입술 붉은 물고기들이 웃으며 강물에서 뛰어올라도
벚나무 아래 그는 오지 않았다
봄 가고 다시 여름이 오고
강이 마르고 벚나무 이파리가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벚나무는 제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서쪽 하늘 붉은 강 위에
벚나무 검은 그림자가 떠서 흐르고 있었다.
시집『입술』시학 2009
-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이상 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