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들키다 / 박라연

폴래폴래 2010. 11. 15. 18:08

 

 

 

 

 

 들키다

 

                        - 박라연

 

 

 

 철새 도래지에서

 살얼음 걷듯 걸어갔는데

 그저 눈빛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거처를

 밥을 버리고 사라져버린다

 행복한 공양 시간을

 폭격한 저격수가 된 것이다

 천지가 빽빽한 이별이 진공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백성처럼 많은 새들 중(中) 한 마리에게

 꽁꽁 언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새의 따뜻한 입속에서 녹아내리기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픈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그 인연 품고 날아오르기를

 주문처럼 외고 또 외는데

 평생을 떠돌다

 생(生)을 마감하는 철새들에게

 인연은 너무 큰 부채라는 듯

 난감한 듯

 날아가 오지 않는다

 

 

 

 

 시집『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 2006

 

 

 

 

 

  - 1951년 전남 보성 출생. 수원대 대학원, 원광대 국문학 박사.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공중 속의 내 정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