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고원에 바람 불다 / 이승하

폴래폴래 2010. 10. 24. 12:53

 

 

 

 

 

  고원에 바람 불다

       ─혜초의 길 1

 

                                          - 이승하  

 

 

 

 세상은 바다

 돛 올리면 집 밖은 전부 길

 닻 내리면 바로 거기가 내 집인 것을

 

 통일했다고 천하 얻은 것이 아닌데

 고기 맛보다 지독한 사치와 향락

 목탁 두드리면 배 채울 수 있는 나라

 무엇을 바라 머리 깎았단 말인가

 갖고 싶은 것이 없어 바닷길 저 너머

 부처의 나라에 가보기로 했다네

 佛法 일어난 까마득한 나라로

 

 얼마나 많은 인간과 짐승들이

 여기 이 고원에서 숨거뒀을까

 고원의 모래 알맹이들이여

 시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느냐

 인간이 나타난 이후의 시간과

 이 모래들 바윗덩어리였을 때의 시간을

 

 세 마을에 한 번은 장례식이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우는 아이들

 물 한 모금의 자비와

 짚신 한 켤레의 보시

 자, 또 한 끼 얻어먹었으니 길 떠나자

 데칸고원과 파미르고원을 지나

 북천축국을 지나 남천축국을 지나

 카슈미르를 지나 건타라국을 지나

 

 바람은 모래둔덕을 만든다

 따뜻한 잠자리는 늘 집착

 세상은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부처의 나라는 저 모래바람 부는

 고원을 넘어가야 있나니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서정시학 2010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박수를 찾아서><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현재 중앙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