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 바람 불다 / 이승하
고원에 바람 불다
─혜초의 길 1
- 이승하
세상은 바다
돛 올리면 집 밖은 전부 길
닻 내리면 바로 거기가 내 집인 것을
통일했다고 천하 얻은 것이 아닌데
고기 맛보다 지독한 사치와 향락
목탁 두드리면 배 채울 수 있는 나라
무엇을 바라 머리 깎았단 말인가
갖고 싶은 것이 없어 바닷길 저 너머
부처의 나라에 가보기로 했다네
佛法 일어난 까마득한 나라로
얼마나 많은 인간과 짐승들이
여기 이 고원에서 숨거뒀을까
고원의 모래 알맹이들이여
시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느냐
인간이 나타난 이후의 시간과
이 모래들 바윗덩어리였을 때의 시간을
세 마을에 한 번은 장례식이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우는 아이들
물 한 모금의 자비와
짚신 한 켤레의 보시
자, 또 한 끼 얻어먹었으니 길 떠나자
데칸고원과 파미르고원을 지나
북천축국을 지나 남천축국을 지나
카슈미르를 지나 건타라국을 지나
바람은 모래둔덕을 만든다
따뜻한 잠자리는 늘 집착
세상은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부처의 나라는 저 모래바람 부는
고원을 넘어가야 있나니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서정시학 2010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박수를 찾아서><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현재 중앙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