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금낭화 / 최명란
폴래폴래
2010. 9. 3. 17:04
금낭화
- 최명란
언니는 미친년이었다
무엇을 보더라도 개구리알같이 웃기만 했다
장목을 달여 먹이면 낫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무당이 할아버지에게 일렀다
오빠의 억센 손아귀에 언니의 턱뼈가 벌어지고
할아버지는 장목* 달인 물을 입속에 밀어 넣었다
웃음을 놓아버린 언니의 입에서 바글바글 하얀 거품이 피었다
미친년 미친년…
할아버지의 주문 같은 중얼거림을 들으며
그 일을 나는 숨어서 지켜보고야 말았다
하느님 짓은 분명 아니다
무겁고 슬픈 몸부림 위로 어느새 햇살이 퍼지기 시작했고
골방에 뉜 언니의 머리는 북쪽으로 향했다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와 눈밭에 미끄러져 죽은 노루같은
언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나는 새끼노루처럼 꺼억꺼억 울었다
유성이 내어놓은 하늘의 길을 따라 언니는 가고
장목 무성하던 그 무너진 담 밑에는
고개 숙인 금낭화 그렁그렁 눈물로 맺혔다
대명천지
한 떨기 산발한 비명과 함께
* 장목 : 중추신경 흥분 약초. 줄기를 달여 사람이 먹으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시집『쓰러지는 법을 배운다』랜덤하우스 2008
-1963년 경남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시집<하늘천 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