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집으로 가는 길 / 이윤학

폴래폴래 2010. 8. 23. 11:16

 

 

   사진:네이버포토

 

 

 

 

  집으로 가는 길

 

                                  - 이윤학  

 

 

 

 어지간히 취했어야 말이지

 고구마 광주리를

 허리에 받쳐 든 할머니가

 철 대문을 발로 걷어찬다.

 

 그는 오늘도 대취해서

 투구봉 산 그림자에

 깡마른 키 높이를 잡아먹힌다.

 

 바글거리는 침 거품을 물고

 나를 버리고 갔다는 말이지.

 나를 버리고 갔다는 말이지.

 

 집 나간 마누라 이름도

 까먹어

 입술에 침 거품만 물고

 까치발을 들고 걸어간다.

 삿대질을 하며 걸어간다.

 그래, 가라고 해. 그까짓 거, 갈 테면 가라고 해.

 고생만 지지리 해가지고 쭉쩽이 된 거, 갈 테면 가라고 해.

 

 마른 나뭇가지 입에 문 까치

 미루나무 꼭대기를 움켜쥔 까치

 휘청거린다.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지 2008

 

 

 

 

 시인의 표지 글

 

 

  어느덧 저수지 한가운데까지 도달했다.

 뒷걸음질 치자니 얼음에 간 금들이 보이고

 앞으로는 버드나무 줄기에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는 게 보이는 것이다. 지름길이었던

 저수지 바닥까지의 수심이 떠오르는 것이다.

 모든 길이 바닥이었다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그동안 비우지 못한 무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짐을 벗고 헤엄쳐 가야 하는 길이 보이는 것이다.

 

 

 

 

 

 

  -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그림자를 마신다> 등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