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그 마을의 연못 / 김선우

폴래폴래 2010. 7. 21. 08:55

 

 

 

 

 

 그 마을의 연못

 

                                - 김선우  

 

 

 

 연못이 있었다

 마을의 서쪽 혹은 동쪽

 

 흰 수련 만발하는 보름의 밤이면

 여인들이 물의 아이를 낳으러 온다나

 반인반수의 선지자가 새점을 친다나

 금단의 열매 향기롭다 하였으나

 이방인에게는

 연못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울창한 전나무와 검은 딸기만 무성한

 그곳은 깊고 푸른 늪일 뿐이더라고,

 돌아와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한 사내가 다가와 내 목을 졸랐다

 다른 사내 가마니를 열었다

 햇불을 치켜든 침통한 눈들,

 나는 연못 속에 던져졌다

 

 어두운 물속

 유령처럼 떠도는 물풀들 사이로

 나는 보았다 물구나무선 채 고요히 흔들리는

 무수한 가마니들,

 그 속에 더러 내가 던져버린 가마니들이

 가라앉는 나를 향해 인광을 뿜는 것을

 

 마음의 동쪽 혹은 서쪽에

 깊고 푸른 연못 하나 있다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 1970년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창작과비평』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