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보고 싶다, 개똥벌레야 / 이준관

폴래폴래 2010. 7. 11. 15:11

 

 

 

 

 

 

  보고 싶다, 개똥벌레야

 

                                   - 이준관  

 

 

 

 반딧불이라는 반짝이는 이름보다

 개똥벌레라는 구릿한 이름이 더 정답다

 

 어릴 적 친구 중에

 개똥벌레가 있었다

 

 너무 가난하고 배고파서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개똥을

 핥아먹었다던가

 

 그 소문이 돌고부터

 아이들은 그 애를

 개똥벌레라고 불렀다

 

 꽁지에 불을 달고 다니던 개똥벌레처럼

 항상 눈에 눈물을 달고 다니던 그 애

 

 청소시간이면 말없이 엎드려

 걸레질을 하던 그 애

 들녘에 벼이삭을 주우러 가면

 얼마 줍지 못한 내게 벼이삭을

 한 웅큼 쥐어주던 그 애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에서 말없이 엎드려

 걸레질을 하고 있을까

 개똥벌레처럼 꽁지에 불을 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불을 나누어 주고 있을까

 

 보고 싶다, 개똥벌레야

 

 

 

 

  『서정시학』2010년 여름호

 

 

 

 

  - 1974년『심상』등단.

     시집<황야><가을 떡갈나무숲><열 손가락에 달을 걸고><부엌의 불빛>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