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저녁이 걸려 있는 화실 / 김경주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고래의 저녁이 걸려 있는 화실
- 김경주
이 저녁은 ‘고래의 눈 속’이다
비가 내리자 하루 종일 어린 딸들의 머리를 땋아 주던 아버지의 견유주의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날 어느 곳에도 숨지 못해 눈으로 추방당한 시제는 어느 날 갑자
기 눈물이 되어 버린다 이후 비린 세계에만 곧 자신의 눈을 주게 되었는데 그 눈의 진
실을 찾기 위해 저녁이 되면 눈을 말리는 사람의 편에 가서 고래는 눕는다 그 저녁은
고래의 눈이다
누군가 내 눈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아 눈을 뜰 수 없었던 순간에 대해
매일 누군가의 검은 눈을 만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순간에 대해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꾸는 꿈은 처음 꿈을 꾸었던 날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꿈일지
도 몰라 바깥소식이라는 게 다 그렇지 처음 눈을 그려 넣었던 도화지 속에 저도 몰래 생
긴 눈사람처럼
고래의 저녁엔 수많은 화실 속으로 바닷속 음계가 흘러가고 물방울들이 움직여 고래가
될 때까지 아이들의 붓 끝은 출렁거린다
비가 오는 날 백 번 꾼 꿈이 있어 고래의 등에 탄 눈사람……
그 눈사람은 고래를 타는 꿈을 몇 번 꾸었을까
이 저녁은 눈사람이 꾸는 악몽이어서 잠시 물린다
늙은 고래가 눈사람들을 자꾸 뱉어 낸다
시집『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2009년
서강대 철학과 졸업. 2003년<대한매일>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 등
김수영문학상 수상
현재 영화사 '고글 픽쳐스' 시나리오 팀장. 안양예고 문학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