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 김혜순
사진:네이버포토
선인장
- 김혜순
사막의 물고기는 헤엄칠 줄 모른다
물이 없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달궈진 냄비바닥 같은 땅을 짚은 채
까치발을 들고 서 있을 뿐
나는 나는 한평생 이걸 품고 살았어요
삼키지 못하고 입술에 머금은 찬물 때문인지
오늘 낮에도 가시뼈 하나 몸 밖으로 돌출한다
그러나 아직 가슴속에 바다는 남아 있어서
푸른 피가 젤리처럼 탁하다
나는 이명과 사랑에 빠진 사람
몸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나는 몸속에 떠 있는 물고기를 키우느라
뼈가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
물고기가 탁한 수면에 걸려
버둥거리는 소리 애타게 듣는다
바람이 몸 밖에 나온 가시뼈를 손으로 훑고 가면
나는 내가 비명을 지르나 가시 쿠션에 귀를 대본다
나는 나는 일평생 나 돋아난 자리 뜨지도 못했어요
혀가 바늘로 꿰매져 있어서
누가 듣는지 마는지 내 물고기들에게만 말한다
몸속 뼈들 낱낱이 헤집어 다 아픈 날
나는 왜 쓰러지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내 발자국 밖에 발자국 하나 또 발자국 하나 공중으로만 내딛는지
발자국마다 가시가 돋는지
세상은 온통 열병 속이어서
멀리서 시커먼 상어처럼 무서운 고통이 불어오고
푸른 물고기떼 한데 뭉쳐져 우왕좌왕하는데
그늘은 없고 아지랑이는 뜨겁고
나는 왜 이 힘든 몸속에서도 출렁거리고 싶은지
나는 나는 바다에 빠진 신발처럼 추워요
푸른 피가 젤리처럼 차가워요
《시에》 2010년 봄호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문학과지성』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등, 동화<마음속의 잉카>
김수영문학상, 현대시 작품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