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선인장 / 김혜순

폴래폴래 2010. 4. 19. 22:30

 

 

  사진:네이버포토

 

 

 

 

  선인장

 

                 - 김혜순 

 

 

 

 사막의 물고기는 헤엄칠 줄 모른다

 물이 없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달궈진 냄비바닥 같은 땅을 짚은 채

 까치발을 들고 서 있을 뿐

 나는 나는 한평생 이걸 품고 살았어요

 삼키지 못하고 입술에 머금은 찬물 때문인지

 오늘 낮에도 가시뼈 하나 몸 밖으로 돌출한다

 그러나 아직 가슴속에 바다는 남아 있어서

 푸른 피가 젤리처럼 탁하다

 

 나는 이명과 사랑에 빠진 사람

 몸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나는 몸속에 떠 있는 물고기를 키우느라

 뼈가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

 물고기가 탁한 수면에 걸려

 버둥거리는 소리 애타게 듣는다

 바람이 몸 밖에 나온 가시뼈를 손으로 훑고 가면

 나는 내가 비명을 지르나 가시 쿠션에 귀를 대본다

 나는 나는 일평생 나 돋아난 자리 뜨지도 못했어요

 혀가 바늘로 꿰매져 있어서

 누가 듣는지 마는지 내 물고기들에게만 말한다

 

 몸속 뼈들 낱낱이 헤집어 다 아픈 날

 나는 왜 쓰러지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내 발자국 밖에 발자국 하나 또 발자국 하나 공중으로만 내딛는지

 발자국마다 가시가 돋는지

 세상은 온통 열병 속이어서

 멀리서 시커먼 상어처럼 무서운 고통이 불어오고

 푸른 물고기떼 한데 뭉쳐져 우왕좌왕하는데

 그늘은 없고 아지랑이는 뜨겁고

 나는 왜 이 힘든 몸속에서도 출렁거리고 싶은지

 나는 나는 바다에 빠진 신발처럼 추워요

 푸른 피가 젤리처럼 차가워요

 

 

 

  《시에》 2010년 봄호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문학과지성』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등, 동화<마음속의 잉카>

      김수영문학상, 현대시 작품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