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쓰는 편지 / 김지녀
폴래폴래
2010. 4. 17. 20:23
사진:네이버포토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쓰는 편지
- 김지녀
눈을 감아도 닫히지 않는 문이 있다
그 문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빗소리가 흘러들기도 하고
이런 밤에는 편지를 쓰네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사라진
몸의 어디쯤을 횡단하고 있을 나의 손가락 하나에게
사실 여러 번 나는 먼 곳으로부터 떠밀려 온 흙더미
창문을 기웃거리는 나뭇잎이었다
썼다 지웠다
우표처럼, 팬지꽃에 붙은 나비의 날개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흩어지는 시간의 주소와 이름들을 불러 보다
이곳에 오지 못한 지문(指紋)을 그려 본다
싱싱하게 번지는 물결무늬 그 무늬에서 푸르게 몸 흔드는 소리
그 소리를 모아 나는 가늘고 못난 글자 하나를 쓴다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잊혀진 곳 어디쯤에서
파도나 비가 되어 떠다닐 나의 손가락 하나에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시집『시소의 감정』민음사 2009
自序
빨갛고 노란 잎들 앞에서
나는 배경이 된다.
다같이
가을.
2009년 지녀
- 1978년 경기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고대 국문과 박사과정.
2007년《세계의문학》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