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지리산행 / 이하석
폴래폴래
2010. 4. 1. 11:11
지리산행
- 이하석
피아골의 가을 소식이 자주 눈에 밟힌다.
나무들이 저마다의 영역을 가지면서 서로 우거지는 곳.
그래, 환하게 깊은 거기,
덜 떨어진 잎들 서로 불러 몰려다니고,
단풍은 돌 많은 비탈마다 붉은 감정 사무치게 켜놓았겠지.
산죽 얽힌 가팔막진 비탈 기어올라 겨우 서는 생각 끝에
생활은 우리에 갇힌 반달곰처럼 왈칵, 검은 벽으로 막아선다.
그래도 지리산 갔다 온 옷과 양말들이 아파트 이웃 베란다에 걸려 있으면,
그런 날은 직장 가는 중년 사내의 월요일 전망이 백무동 계곡처럼 울퉁불퉁하다.
흐린 골목 빠져나가다 돌아보면 키 큰 사시나무처럼 푸드득거리며
누가 또 지리산 갔다 오는 게 보인다.
급한 마음 곧추 세워 흐르는 골짜기의 물소리 헤아리는지
혼자 밥 먹는 이의 이마에 구름 그늘이 희게 드리운다.
그 생각의 언저리가 단풍처럼 붉어지면 주말엔 꼭 한 이틀 뱀사골에서 풀고 오겠다며 슬리핑백이랑 라면이랑 미리 챙기는 이 있다.
반야봉 오르는 산비탈 소식이 또 급하게 경사진다.
『서정시학』2010년 봄호
- 1971년『현대시학』등단.
시집<투명한 속><김씨의 옆얼굴><우리 낯선 사람들><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 데를 본다><녹><것들> 등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