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 이정록

폴래폴래 2010. 3. 26. 23:46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 이정록 

 

 

 

 목련꽃 환한

 낡은 기와집

 

 나무 대문 앞에

 弔燈이 걸려 있다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

 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

 

 저렇게

 食口가 많았던가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부터 펄럭였나

 빛바랜 달력 한 장

 

         빈방 잇슴

      보이라 절절 끄름

 

 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

 哭소리 새어 나온다

 

 건을 벗어

 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

 

 

 

 

 시집『의자』문지 2006

 

 

 

 시인의 말

 

나무는 골치 아픈 생각을

몸통과 뿌리에다 디밀었습니다.

갈수록 밑동과 뿌리는 검고 우툴두툴해졌습니다.

나쁜 생각이 내려가는 나무 안창은

 방고래처럼 까매졌습니다.

 몸 안에 검은 허공을 품은 까닭으로

 우듬지의 꽃과 이파리는 아름다이 피어나고

 여린 가지도 하늘로 시원스럽게 뻗어나갔습니다.

그곳에는 오래 여문 생각이

씨앗으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2006년 봄

이정록

 

 

 

  - 1964년 충남 홍성 출생.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제비꽃 여인숙> 등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