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절정은 한소끔 / 홍정순

폴래폴래 2010. 1. 28. 13:48

 

 

사진:네이버포토

 

 

 

 

  절정은 한소끔

 

                                - 홍정순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어슷하게 썬 무를 넣는다

 흑백사진 속

 얼큰한 아버지와 엄마는 여전히

 동태와 끓고

 좋은 한 때는 일시정지 중인데

 나무 도마가 허락했을 수많은 생선대가리들

 표정은 도무지 알 수 없다

 ─ 야아, 손만 잡아도 애가 섰어야

 동명태(凍明太), 칼이 안 든다

 가볍다 먼 바다를 향해 풀리는 지느러미

 아가미에서 번져 나오는 웃음

 맛은 수많은 칼질 뒤에야 비로소 온다

 한소끔 끓고 있는 동태도

 동백꽃처럼 매운 여인이고 싶은 것도

 좋은 때는 좋은 때인 줄 모르고 끓는데

 그래서 아직도 끓고 있는 중인데

 아버지와 엄마도

 난바다 건너편 어디쯤에서

 노을빛 전생을 풀무질하는 중인지

 그 또한 알 수 없는데

 

 

 

  -『유심』2009년 11~ 12월호

 

 

 

  -충북 단양 출생. 2009년《시안》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