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지도박물관 / 권지현
폴래폴래
2010. 1. 20. 23:49
지도박물관
- 권지현
지도박물관 중앙 홀에서
세 살배기 딸애가 쉬를 싸고 운다
떼쓰는 아이를 안아올려 화장실에 다녀온다
외할머니가 바닥을 말끔히 닦아내는 중이다
어지간히 닦으세요
홀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지도를 본다
지도 시뮬레이션을 다섯 살 아이에게 빼앗기고
휙휙 눈을 스치던 지구,
지구에 박힌 도시, 그 불빛 속에 그어진
그물 같은 길을 한정없이 따라 걸으려던 딸애는
미련이 남았는지 내 손을 잡아당긴다
연중무휴로 개방되는 지도박물관, 고산자 동상 쪽으로
흙담집 실금을 뚫고 나온 풀포기 자라듯
소나무에 덩굴을 치다 내려온 칡꽃이 기어간다,
오만분의 일 축척지도 밖으로 내달리는
떼쓰는 세 살배기 울음이 맨 처음 나선 길은
말랑말랑한 탄성, 이내 되돌아온다
길이 되려다 지도가 된 고산자 발치에서
자줏빛 칡꽃은 한창 길을 내고 있다
질긴 제 몸을 말아쥐는 덩굴손 사이로
달음질치는 아이의 신발끈을 고쳐 매어 준다
길 위에 선 사람들이 흩어진다
- 1968년 경북 봉화 출생, 서울에서 성장함.
국민대 국문과 동 대학원 박사.
200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국민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