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에서 우는 뻐꾹새 / 김선우
내 뒤에서 우는 뻐꾹새
- 김선우
나는 목련나무 아래 누워 있었다 흰나비 모빌처럼 목련은 흔들리고 뻐꾹새 울음 그때 우리 사랑을 나누었던가……
그를 만난 건 성탄절 무렵이었다 눈은 내려 발등에만 쌓이고 걸음이 무거웠던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잠시 빌렸다 수척한 그가 소주잔을 들 때마다 손등에 선명한 못자국이 보였다 간간이 검붉은 피가 흘러 화무, 화무십일홍…… 술잔에 빠진 꽃잎을 건져내며 눈물이 날 때까지 우리는 웃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느낌표 뒤에 물음표가 와야 했던 건 아닐까 가지런히 젓가락을 놓는 그의 손끝이 떨렸다 탁자가 흔들리고 술잔이 떨어지면서 이미 젖어버린 깃발이 얼룩졌다 선명한 발자국들, 절망을 전유하지 않고서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엘리, 엘리…… 엘리, 엘리…… 그날밤 나는 그의 애인이기를 청하였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었던 건 맑은 물 한사발. 그는 내 앞에서 꼭 두 번 울었다 그것도 한번은 등뒤에서였으므로 뻐꾹새처럼 딸꾹질하는구나 뻐꾹새, 이봐, 봄이 오면 목련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 그림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꽃잎이 내 이마를 덮기 전에 내게로 와 불탄 자리처럼 선명한 얼룩이 심장에 남을 거야
그가 더이상 내 앞에서 울지 않게 되었을 때 못자국에서도 더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만 나를 떠나줘 목련나무 아래에서 쇠못을 줍던 내가 말했다
-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1996년『창작과비평』겨울호 등단.
' 시힘 '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