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압화(押花) / 김지녀
폴래폴래
2010. 1. 10. 10:56
압화(押花)
- 김지녀
그 집의 문은 닫힌 지 오래, 북쪽으로 난 작은 문 창호지에 사시사철 국화가 피어 있었어 그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잠이 왔어
엄마는 눈만 내민 악어처럼 꼼짝하지 않았어 나와 닮지 않은 아이들이 하나씩 문밖으로 떠밀려 나왔지 나는 문고리에 숟가락을 걸고
체인 끊어진 자전거를 타고 놀았어 차르르, 물때 낀 엄마의 손톱이 잘려 나갈 때 도르르 나는 페달을 돌렸어 엄마의 혀끝을 맴도는 냄새들만큼 오래된,
문풍지가 우는 밤마다 떨리던 불빛과 눈빛 엄마는 이제 부풀지 않아 잠만 자고 있을 거야 문에 난 유리창에 보랏빛 저녁이 물드는 동안
문고리가 아직 따뜻해 내 눈동자에 눌어붙은 국화가 바스러졌어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저 방의 문을 닫고 돌아서는 아이는 나를 닮았어
- 시집『시소의 감정』민음사 2009
- 1978년 경기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고대 국문과 박사.
2007년《세계의문학》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