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뼈의 기원
- 안병호
문득, 뼈가 시려오면
내 뼈의 아득한 시원을 찾아
눈과 바람의 길을 걸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의 문명이지만
그것은 비석에 판각되거나 정의되어진 것만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이 내 속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말 속에도 뼈가 있다하고
문중의 아재 한 분은
바람조차 투명한 뼈를 지니고 있다하므로
뼈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모든 족속은 그 조상으로부터
몇 개의 맑고 흰 뼈를 물려받아 사는 동안
또 한 생이 고요히 마감되는 것이다
"뼈가 시릴 적엔 몇 모금 음복술로 덥히면서 오백년 전, 통정대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삼십대에 무슨 사화로 졸(卒)하신 당신, 처자식은 관노가 되고 그 때 당신의 눈물은 눈발이 되어 사방 백리까지 날렸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뼈마디마다 수수눈꽃을 피우면서 아버지와 저의 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발 속에도 맑은 뼈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가 졸(卒)하시던 그 때처럼"
아버지는 신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하여
생의 마지막 즈음 공사판 반장직에 올랐는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졸(卒)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뼈만 남은 문양으로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흐린 물기를 보였는데
물기는 뼈를 타고 흐르다 서서히 결빙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한 뼈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경해 입관 하던 날조차
차거운 뼈를 따습게 데우지 못했다
그 날에도 먼 곳에서부터 눈발이 날려 왔고
오래지 않아 강아지처럼 여린뼈를 가진
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오늘 밤 수북이 눈이 내립니다. 눈송이 송이마다엔 당신의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북편에서 날리는 눈발에는 종가에 계자로 와 당신 집안은 절손 된 9대조 조부님의 눈물도 보입니다. 저와 아이는 오늘 같은 밤이면 뼈를 살포시 맞대고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눈 오시는 밤은 참으로 마음 따습습니다."
뼈가 잘 맞물려서 사계절을 보냈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나의 뼈는 좀 더 유연해지고
아이의 뼈는 좀 더 옹골차졌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
뼈마다 하얀 풀꽃이 피어난다
향불을 피우는데 음력 시월 을해(乙亥)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린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상로기강(霜露旣降)
첨소봉영(瞻掃封塋)
불승감모(不勝感慕)
근이(謹以0
청작서수(淸酌庶羞)
지천세사(祗薦歲事) 상(尙),
향(饗)
"당신들께서는 하얗게 뿌려지는 눈으로 혹은 투명한 축문의 곡조로 살아오십니다. 맑은 눈발 속 나폴 나폴 떠다니는 어린 것이 또 다른 뼈의 기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뼈를 추스르며 어린 뼈를 돌보려합니다. 아이를 가만히 껴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