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와인에 빠져있는 동안 발은 와인빛이었다 / 최형심
사진:네이버포토
내가 와인에 빠져있는 동안 발은 와인빛이었다
- 최형심
나는 천 갈래의 이별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별은 꼭대기에서부터 자랐다. 허공을 그 끝에 매달고, 발은 이별을 위해 태어났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빨아올려 발이 자랄 때 가슴은 시나브로 낡아가고, 뿌리를 가졌지만 한 번도 나무가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슬픔은 발에서부터 나왔다.
내 슬픔위에 검은 발톱이 돋고, 심장이 와인빛으로 덜컥거렸다. 빛을 향할수록 멀어지는, 나는 내게서 한 뼘이나 늘어났다. 음지에 드는 날이 늘어가고 웃자란 것들이 허리까지 내려와, 나는 저 밑에서 내려가 상념에 잠겨야 했다. 귀를 밟고 내려오던 발 한 조각에 밤새 뒤척였다. 등을 찌르는 칼날 같은 것들, 슬픔에 발목이 다 젖었다. 그들도 한때 누군가의 안쪽이었다.
끝은 늘 시작의 앞에 있었다. 거울은 내가 놓쳐버린 시간들을 잘랐다. 내 몸을 헐어 몸집을 불린 그들, 싹둑 싹둑 은빛 가위가 내 몸을 돌아나가고, 마디마디 끊어진 생각이 바닥에 뒹굴었다. 내 머리에 뼈를 묻은 수천 개의 발(髮),
언젠가 입이 없는 것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인시각』2009년 겨울호
-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현대시> 등단. ' 젊은 시인들 '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