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밤 / 조은
성스러운 밤
- 조은
고양이가 운다
애절하다
피가 굳고 있는 거다
고양이를 품에 안아 녹여주고 싶은
내 따뜻한 몸에서
하얀 눈이 길을 내려 반짝거린다
나는 딴딴하게 얼고 있는
생명이라는 어둠의
나약해서 강렬한 눈을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몸속 피를 흔들어
좀더 흐르게 하는 것뿐
(고양이의 의지를 알 수만 있다면!)
고양이는 더는 움직일 수 없는지
차 밑으로 들어가 웅크린다
고통이 한 목숨을 끌고 다닌다
춥고 바람 찬 거리에
마침표로 놓는다
시집『따뜻한 흙』문지 2003
시인의 말
첫길도 익숙한 길도
갈 때보다는 돌아올 때의 발걸음이
가볍고 빨랐다.
굼뜨고 어눌한 이 행위에서
가고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2003년 11월
조은
-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세계의문학》등단.
시집<사랑의 위력으로><무덤을 맴도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