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선암사 5박 6일 / 이덕규

폴래폴래 2009. 11. 13. 23:22

 

 

 

 

 

 

      선암사 5박 6일

 

                                     - 이덕규  

 

 

 

 1

 조계산 자락 선암사 입구

 덩치 큰 굴참나무들이 툭툭 갈라터진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두어 명씩 조를 지어 서성대다가

 느닷없이 나를 불러 세우고 검문검색을 한다

 

 이것저것 마냥 쑤셔 넣은 식탐 많은 어린아이처럼

 배가 불룩해진 배낭 속에 나도 모를 또 다른 무슨 꿍꿍이 속셈이?

 피할 새도 없이

 배낭 깊숙한 곳에 꽁꽁 묶어놓았던

 마음자루 주둥일 풀어 보여주니, 일주문 옆 천석꾼 곳간보다 더 큰

 해우소 가는 길부터 일러준다

 

 2

 물만 먹기로 한 지 닷새째, 밤새 눈 내리고 바람 불었다

 

 산방에 갇힌 텅 빈 몸속의 캄캄한 적막에 웅크린 짐승 한 마리

 끼니때마다 어슬렁 밖으로 기어 나와

 둔해진 몸 부위별 지방 흡입 시술하듯 푸석살부터 물어뜯어 곱씹다가는

 식곤증에 겨운 듯 제자리로 들어가 잠잠하다

 

 아, 지금껏 폭식하는 마음이 비육해온 몸을 생짜로 조금씩 뜯어 먹는 단식의 몽롱한 포만감이여!

 

 잠이 쏟아진다

 이제 잠시 먹다 남은 육신을

 이 산중에 쑤셔 넣어두고 그동안 은밀히 가고 싶었던

 곳, 두루 마음만 다녀와도 되겠다

 

 3

 이른 아침 산사 뒤꼍 작설(雀舌) 밭에 올라

 눈을 한 줌 뭉쳐 먹는다

 입 안에 불이 붙듯 녹으며 감쪽같이 사라지는 눈의 흰빛 마음 뒤에

 맑게 고이는

 차디찬 물 한 모금이 다디달다

 

 

 

            시집『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2009

 

 

 

                    [시인의 말]

 

    들판에서 일을 할 때,

    어느 순간 힘의 한계에 이르러 미세하게 떨리는 손목 관절이나 장딴지 근육쯤에서

    꽃 멍울 터지는 소리가 난다.

 

    (몸을 아껴 쓰는 것은 生을 낭비하는 것)

 

    척박한 몸속에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그 힘겨운 감탄사가

    정녕 시의 향기로운 입김이라면……, 나는 여전히 꽃다운 시절이다.

 

 

         ─土愚方에서 이덕규

 

 

              -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현대시학』등단.

                제9회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시집<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