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11월 / 정일근
폴래폴래
2009. 11. 8. 22:26
11월
- 정일근
혼자 내원에 들었다
정시 정각에 도착한 열차처럼
나는 가장 좋은 시간에 닿았다
잘 익은 나무들과 함께 걸어서 당도한 11월
나무의 1과 1 사이로 황금빛 수평선 펼쳐지고
그 사이로 겨울 철새는 풍경이 되기 위해
먼, 차가운 먼 북쪽에서 세차게 날개 치며 돌아오는 중이다
물들기 위해 봄부터 함께 걷기 시작한 나뭇잎
한 장 한 장, 햇살 되받아내며 눈부시고
바람은 차고, 밝은 몸으로 찾아와
마지막 꽃 씨를 풀씨를 날린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원융무애의 바다에 당도하듯
내원의 나무가 걸어서 당도한 바다, 저 깊은 바다
먼저 물든 낙엽부터 먼저, 풍덩풍덩
미련 없이 돌아가는데
묵언하는 나무가 날기 위해 천천히 등을 굽힌다
-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1984년『실천문학』198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기다리는 것에 대하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