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숙박계 / 이덕규
폴래폴래
2009. 11. 6. 22:11
사진:네이버포토
숙박계
- 이덕규
늦은 밤 후미진 골목 여인숙 숙박계 막장에 나를 또박또박 적어넣어본 적이 있으신가?
밤새 오갈 데 없는 어린 눈송이들이 낮은 처마 끝을 맴돌다 뿌우연 창문에 달라붙어 가뭇가뭇 자지러지는
그 어느 외진 구석방에서 캐시밀론 이불을 덮어쓰고 또박또박 유서 쓰듯 일기를 써본 적이 있으신가?
이른 아침 조으는 주인 몰래 숙박계 비고란을 찾아 ‘참 따뜻했네’ 또박또박 적어넣고
덜컹, 문을 열고 나서면 밤새도록 떠돌던 본적지 없는 눈송이들을 막다른 골목 끝으로 몰아가는 쇠바람 속
그 쓸리는 숫눈 위에 가볍게 목숨을 내려놓듯, 첫 발자국을 또박또박 찍으며 걸어가본 적이
있으신가?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지워질 그 가뭇없는 기록들을…… 당신은 또박또박
시집『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2003
-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