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광부의 처 / 천수호
사진:네이버포토
백수광부의 처
- 천수호
가을비가 촉촉, 내려요 나는 방금 시위를 떠난 화살이에요 촉촉 비는 계속 내리고 내 촉은 과녁을 향해 재촉해요 촉촉, 비가 오니까 과녁이 흔들려요 촉촉 어디를 뚫을까요 눈앞이 촉촉해요 내 발이 안 보여요 그렇다고 화내지는 않아요 촉발은 위험하니까요 제발 과녁을 바로 세워요 돌아보라구요? 돌아가라구요? 말했잖아요 과녁만이 내 길이라구요 자꾸 흔들려요 과녁이 아니라 내가 흔들려요 그래도 촉촉 비가 와요 아하, 저 비는 땅이 전부 과녁이네요 비가 촉촉 내 몸에도 꽂혀요 내 몸도 과녁이어요 촉촉 온몸이 촉촉해져요 원하지 않아도 내 몸엔 촉, 촉만 남아요 촉촉 비는 내리고 아직도 나는 휘적휘적 날고 있어요
시집『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 2009
自序
폐교 운동장 구석,
서녘 하늘로 기운 태양에 아직 달아 있는 몽돌 하나
어디에서 와서 그 어색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홀로 품으려 애쓰는 자리, 혼자 바다를 그리워하는 자리
내게 시는 연민에서 출발한 사물 이해법
그것이 사물을 보게 한, 또는 보이게 한 시력이다
내 시 속에 늘 오도카니 있는 존재들,
그 외딴 것들이 느끼는
아주 붉은 현기증
2009년 3월
천수호
-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계명대 문창과 ,명지대 박사.
2003년《조선일보》신춘문예 등단.
2007년 문예진흥원 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