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꿀벌의 열반 / 김선우
폴래폴래
2009. 10. 12. 13:03
사진:네이버포토
꿀벌의 열반
- 김선우
어느 굽이 긴 터널을 통과해왔는지
꿀벌 한마리
내 방 쪽창 벤자민 화분에 떨어졌네
찢어진 날개 허공을 움켜쥐어
대기권 밖이 찰나, 수런거리는데
(얘야 석류꽃 피는구나……빨래 널던 어머니)
기일게 담배 한개비 태워무는 동안
허공이 몇백번 움켜졌다 놓여나고
나 생각하네
괴롭구나 이제 그만 끝내줘야겠구나
벤자민 나무 아래 무명지로 무덤을 파고
꿀벌을 옮겨 넣었네 조용히
흰구름 몇천번 스쳐지나고 뭉치는데
(얘야 석류꽃 지는구나……뜰을 쓸던 어머니)
아니었나 괴로운 게 아닌지도 몰라
생애 단 한번 저이는
단 한번 내 방 쪽창 벤자민 나무 아래에서
햇살이라든가 공기라든가 공기 속에 흩어진
몇 생애 전 꽃가루를 만나는가
가쁜 호흡, 운우지정을 나누고 있는 것도 같아
쥐었던 흙 한줌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배냇적 네 잇몸 같은, 얘야 이 석류알 좀 보려무나)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1996년『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발표로 등단.
현재 ' 시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