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검은 방문 / 이일옥

폴래폴래 2009. 10. 7. 22:34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검은 방문

 

                              - 이일옥 

 

 

 언제부턴가 들판 한 켠에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들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

 검고 앙상한 군집들은 저녁 무렵 죽음을 발라내듯

 노을 몇 줄 서쪽 허공에 게워내곤 했다

 누군가는 불안한 헛기침으로 외면했고

 누군가는 새벽녘 꿈이 떠올랐는지 이마 깊이

 검은 주름살을 모으며

 고샅길 안으로 하루를 숨겼다

 오랫동안 자족의 평안에 담겨 있던 마을이

 한순간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노인은 몇 십 년 전에도 그것들이

 마을을 파먹은 적이 있었다고 했고,

 나는 못내 외면하면서 까마귀가 그림 속에서

 한밤의 어떤 태양을 파먹었는지 궁리에 들어갔다

 

 모든 길흉들은

 추수가 끝나면 마을로 날아들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마을의 구구한 해석이 들판을 향해 내뱉어지고

 올 겨울에도 그걸 잘못 해석한

 노인 하나쯤 벌판 저쪽으로 버려질 것이다

 

 나는 한동안 길을 끊었던 성서를 들췄고

 그 잠언 속을 헤매는 사이

 불면은 까마귀의 부리처럼 날카로워져

 새벽까지 파먹곤 햇살 속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상 당선작 2009하반기

 

 

 

           -강원도 양양 출생. 차령문학회 동인.

           대한 미협 입상. 태을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