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돌에게는 귀가 많아 / 김선우

폴래폴래 2009. 9. 6. 09:43

 

 

 

 

 

 

      돌에게는 귀가 많아

 

                                                 - 김선우 

 

 

 

 귀가 하나 둘 넷 여덟

 나는 심지어 백 개도 넘는 귀를 가진 돌도 보았네

 귀가 많은데 손이 없다는 게 허물될 것 없지만

 길 위에서 귀 가릴 손이 없으면 어쩌나

 나도 손을 버리고 손 없는 돌을 혀로 만지네

 이 돌은 짜고 이 돌은 시네

 달고 맵고 쓴 돌 칼칼한 돌 우는 돌

 단 듯한데 실은 짜거나

 쓴 듯한데 실은 시거나

 혀끝을 골고루 대어보아야

 돌이 자기 손을 어떻게 자기 몸속에 넣었는지

 알 수 있네 무미 무취라니!

 무취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귀가 많으니 돌이야말로 맛의 궁전이지

 당신이 가슴속에서 꺼내 보여준

 막 쪼갠 수박처럼 핏물 흥건한 돌덩이

 맵고 짜고 쓴데 귀 가릴 손이 없으니

 내 입술로 귀를 덮네

 입술 온통 붉은 물이 들어

 어떻게 자기 귀를 몸속에 가두는지 보라 하네

 

 

 

           시집『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지 2007

 

 

 

           - 1970년 강릉 출생.

              1996년『창작과비평』등단.

              현대문학상 수상. '시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