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무릎나무 / 이민하
폴래폴래
2009. 9. 3. 08:34
무릎나무
- 이민하
화분을 엎질러.
누군가 달려올 때까지.
무릎으로 기어.
누군가 내려다볼 때까지.
두 발을 버리고
흙에 생살을 비벼서
너의 눈가에 붉은 점토를 바를 거야.
그 속에 목발로 서서
배양토처럼 너의 눈을 파먹으며 자랄 거야.
무릎 둥치에서 잔뼈들 뻗쳐오르고
실핏줄 흘러 흘러
다시 숲을 공사할 때까지
뒷문에서 떠드는 바람은 입닥치라고 해.
소문을 올라타는 후배위밖에 모르는
말 많은 짐승들.
당신의 두 번째 체위는 불멸의 화분.
난 무수한 잎사귀
녹색 손톱으로 빗물의 현을 뜯을 거야.
무릎에서 수액 대신 피가 흐르는
나무가 되어 철철철 사시사철 소스라칠 거야.
멍이 진 살점들이 과육을 만들면 푸딩처럼
혓바닥 스푼으로 떠먹는
날들의 키스.
동충하초처럼 우린 다정하게 앉아
남은 부위를 마저 손질하며
기억의 냉동탑에 실리는 포장육 더미를 바라보네.
천근만근 껴입은
새떼를 벗어 말리듯.
- 2000년『현대시』등단
시집<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