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곁을 지나며 / 신덕룡
사진:네이버포토
회화나무 곁을 지나며
- 신덕룡
해미읍성에서 본다, 대원군의 명(命)으로
머리채를 매단 채 마당 한가운데 서 있던 회화나무를.
눈대중으로 헤아리니 두 아름쯤 되겠다. 이 정도면 가지마다 한두 사람 매달고도 끄떡없겠다.
철사줄 자국은 어디에 있나요?
나무 가지를 더듬던 여자가 묻는다.
마음의 병을 몸이 먼저 앓았는가. 가지에 찍혀 있는 자국은 없고 텅 텅 몸을 비운 줄기만 보였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상처로 시작되었으리라. 흠집이 패여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되고 헐고 삭아 구멍이 되었으리라. 그 자리에 비바람과 눈보라, 무심한 햇살들이 드나들어 드디어는 구멍조차 지워졌으리라.
글쎄요……,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람 소리 캄캄한 한숨 소리
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던 소리
어느 하나 아픈 자국이 아닌 것 없을 터이니
오늘, 회화나무를 바라보는 눈길들 분주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서는
길은 감옥처럼 쓸쓸하고
오랫동안 품고 별러온 이별을 하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시집『소리의 감옥』천년의시작 2006
- 경기 용문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5년『현대문학』평론
2002년『시와시학』시 등단.
광주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