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폐경기 / 유현숙

폴래폴래 2009. 8. 28. 09:28

 

 

 

 

              소금꽃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폐경기

 

                      - 유현숙 

 

 

 

 질척하고 어둑한 갱 속으로 발자국이 무례하게 들어선다

 구름장 밑으로 얇은 얼음이 한 잎 깔렸다

 개구리 등처럼 사느란 경칩 하늘에서 우지끈 지금 우박이 들이친다

 

 갱목 부러지는 소리, 비밀하게 닫혔던 방 문고리 달그닥대는 소리

 어디선가 댓잎들 스스스 몸 부비는 소리, 아침나절의 정사처럼

 수런수런 들리는데

 휑한 갱도마다 바람은 구릉을 짓고 시누대 아래에는 벌써 자분자분

 우박 섞인 적설이 깔렸다

 폐염전에 피었던 소금꽃이다

 꽃 벙그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이들도 다 자라서 떠난 빈 소금밭에 소금꽃이 서럽다

 

 내 안의 구석구석이

 늙은 짐승이 몰아쉬는 숨처럼 꺼칠하고 참담하다

 닳은 문고리 떨어지는 소리 초음파 페이퍼에 흑백으로 복사된

 갱도 입구에는

 아직 물이 덜 든 감잎들 여기저기 떨어져 뒹굴고,

 

 이제 갱목들 틈으로 물 흐르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

 

 

 

        시집『서해와 동침하다』문학의전당 2009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3년『문학·선』신인상.  ‘온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