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결핍 / 김왕노

폴래폴래 2009. 8. 9. 11:27

 

 

 

 

 

 

 

          결핍

 

                         - 김왕노 

 

 

 

 생각해보니

 저 언덕을 넘어 여름이 내게 오지 않았다

 북방여치 울어야 할 늦여름의 시기인데

 남루한 봄의 슬픔만 내게 죽치고 있다.

 밤이 오고

 한 초롱 내 목숨에 심지를 담가 등불을 켜야 하는데

 불빛을 따라 어린 게 같은 아들딸이 귀가해야 하는데

 지축이 흔들려 내게 백야가 왔나

 아직도 내게 떠도는 행려병자 같은 봄 햇살

 생각해보니

 저 거리를 지나 어떤 그리움도 내게 오지 않았다

 마흔도 훌쩍 넘었는데

 벌써 심은 꽃이 시들어가는데

 누가 거리에서 혁명을 외치다 쓰러져가며 부른 아픈 노래인가

 몇 년간 노래만 내게 와 살고 있다

 문도 며칠째 따두었는데 와야 할 것은 오지 않고

 먼지만 쌓여가는데

 내게 와 떠나지 않는 한 시대의 어지럼증

 생각해보니

 저 언덕을 넘어 어떤 종소리도 내게 울려오지 않았다

 어떤 맑은 별도 내게 흘러오지 않았다

 

 

 

                   시집『말달리자 아버지』천년의시작 2006

 

 

 

                   - 1957년 경북 포항 출생.

                      1992년《매일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슬픔도 진화한다>

                      해양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