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축제 / 박서영

폴래폴래 2009. 8. 3. 01:44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축제

 

                                   - 박서영 

 

 

 

 족발집 골목

 비닐마스크를 쓴 돼지머리들이 전시되어있다

 

 웃는 입에 매화 꽃잎이 꽂히려고 달려왔다가 그냥 갔다

 편지를 꽂으려고 우체부를 가장한 남자가

 서성거리다가 그냥 갔다

 사춘기들이 웃음을 보려고 다가왔다가 그냥 갔다

 아주머니들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비닐 안의 얼굴을 보려고 기웃대다가 그냥 갔다

 웃는 입의 냄새를 맡고 비둘기들이 날아왔다가 그냥 갔다

 비닐 마스크의 위력으로 모두 그냥 갔다

 햇빛과 바람이 내부를 점령하려다가 바깥에 달라붙어있다

 공기가 돼지의 심장을 찾아 헤맸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걸 안다

 썩어버린 부위를 빨아먹는 공기의 긴 혀 위에

 매화 꽃잎들이 얹힌다

 남자와 여자가 얹혀 뒹군다

 사춘기들이 깔깔대며 고개를 젖히고 있다

 비둘기들이 쪼아 먹는 공기는 3분 간격으로 되살아난다

 

 모가지 깊숙이 파고들었던 칼의 흔적

 삼키지 못한 비명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간다

 썩어가면서 고통을 기억 한다

 

 

 

 

             - 1968년 경남 고성 출생.

                1995년『현대시학』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