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젖가슴 골짜기 / 김승희

폴래폴래 2009. 7. 28. 12:21

 

 

 

 

 

 

 

              젖가슴 골짜기

 

                                                    - 김승희 

 

 

 

  그 산에 동백사라는 절이 있더란다.

 

  그 절에서 수행을 하던 주지스님이 득도 직전 아름다운 여인에 홀려 벼락을 맞아 바다에 떨어졌는데, 가사옷이 날아가 가사도가, 장삼이 날아가 장산도가, 날아간 상의가 상태도, 하의가 하의도가 되었더란다. 손가락은 주지도, 발가락은 양덕도, 목탁은 불도가 되었더란다.

 

  네가 무슨 섬을 섬기겠느냐,

  득도 직전까지 가보겠느냐,

  벼락 맞아 죽을 만큼 사랑해 보겠느냐,

  폭포와 피, 동백꽃 심장,

  수평선과 지평선 온 가슴 낭자한 가슴 골짜기에

  쌓여, 흘러, 점점이 찢어져

  아, 모르겠다, 난 이제 간다,

  젖 먹던 아이 두고 홀연 일어나

  한반도 어느 바닷가에 젖가슴 낙조 한 이천 리 남기고

  내 모가지는, 내 손가락은, 내 발가락은

  이름도 없이 그냥 바다에 모두 드리고 날아가리

 

 

 

 

                    - 1952년 전남 나주 출생. 서강대영문과 同대학원 국문과 박사.

                       1973년『경향신문』신춘문예 시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