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 / 최명란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닭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
- 최명란
닭잡는 날 닭들이 조용해졌습니다
갖가지 울음으로 시끄럽던 닭장이 차라리 정적입니다
어마나, 밥을 주던 저 손이 우리 목을 비틀다니요
마당에 솥을 걸고 불을 지피고 물을 끓입니다
끓는 물들의 난해한 맥박소리
잠을 잘 수도 없는 대낮에 우린 그 소릴 들어야 해요
지켜보며 익어가는 냄새까지 맡아야 해요
단지 좀 울었을 뿐인데 좀 시끄럽게 했을 뿐인데
왜 죽는지 몰라요 죽어야할 이유도 몰라요
수탉은 한 마리로 충분해
유정란을 낳는 일도 암탉을 건사하는 일도 한 마리면 충분해
과다복용은 있어도 공평한 게임은 없나봅니다
부리로 마당을 파헤쳐
가장 총애하는 암탉에게 지렁이를 먹이며 밝히던
수탉의 눈알!
이미 들어간 솥에야 무슨 공포가 있겠습니까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햇볕은 죽어라 더 쪼아대고
심장 옆엔 또 한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복불복입니다
닭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입니다
『시산맥』2009년 상반기 (창간호)
- 1963년 경남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2006년《문화일보》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