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추억 마케팅 / 류인서

폴래폴래 2009. 7. 26. 11:02

 

 

 

 

 

 

 

 

 

          추억 마케팅

 

                                        - 류인서 

 

 

 

  추억 마케팅이 시류라지요 아마? 달리 향수 판매라고도 부르는, 아 지레 코를 킁킁거리진 마세요 당신, 단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근원의 그리움을 살짝 충동질해주자는 얘기죠 이건 얇은 물주머니와 같아서 바늘 끝만한 자극에도 바로 반응하게 돼 있거든요 봐요 노래도 영화도 리메이크 버전, 아기공룡 둘리가 주민번호를 받고 잠자던 태권브이가 아싸, 철권을 날리지요 카푸치노 비엔나 에스프레소, 오만 것 다 홀짝거려봐도 당신 입맛엔 역시 다방커피가 제일이구요

 

  영락없는 도깨비놀음이라구요? 큰물 진 여름날 황토하천에 흘려보낸, 귀신 시끄럽다 진작에 엿 바꿔 먹어버린 구년묵이 헛것들을 어디 가서 찾느냐구요?

  걱정 마세요 추억은 어차피 유령이거나 부장품인걸요 이건 일종의 도굴 프로젝트라 당연히 분묘개장공고 따위의 번거로운 절차 생략이에요 간단해요 고갈되지 않는 지하자원, 무덤 같은 당신의 기억에 접이식 내림사다리 하나만 걸치면 되는데요 뭐, 그림자 몇 조각 집어내는 걸로 충분해요 단계별 추억회생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누추한 기억일수록 도금발이 한결 쌈박하게 먹힌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일종의 연금술이죠

  버려둔 상한 그림자들을 불러모으세요 삼면경 속에서 흔들리던 할머니의 촛불 한 접시, 신발짝에 퍼담아온 논개구리 알이라도 좋아요 생손가락 앓던 당신의 창백한 검지 손톱이라도 좋구요

 

  가소롭게시리 뉘 앞에서 선무당 휘파람 흉내냐구요? 당신의 업(業)이야말로 세상 최고(最古) 전통의 추억 마케팅이라구요? 스쳐가는 것들을 낚아채 잘근잘근 추억의 사이즈로 난도질하는 재미, 추억의 봉합사로 감쪽같이 꿰매붙여 다시없는 변종품으로 세간에 내놓는, 그게 당신 업이라구요? 아하, 대충 알 만하네요 누군지

 

 

 

 

                       시집『여우』문학동네 2009

 

 

 

 

                    - 경북 영천 출생,대구에서 성장.

                       2001년「시와시학」신인상

                       시집<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