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내 처음 아이 / 정끝별

폴래폴래 2009. 7. 13. 19:06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내 처음 아이

 

                                         - 정끝별 

 

 

 

 일곱살 딸애가 자면서 울고 있다

 돌아누운 등이 풀썩풀썩 내려앉을 때마다

 애처로운 고양이 한 마리 한껏 젖어

 갓난아기 적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울지 마 아가 괜찮아 괜찮아

 

 꿈에 나는 여름 아침 일곱살이네

 낯선 외출을 준비하는 서른아홉의 엄마가 끓여준 새우 죽은 맛도 좋았건만

 아버지는 여전히 역정을 내시고

 엄마 없는 아침은 금방 저물어

 저물어서야 입학식에 가려고 비탈길을 달려내려가네

 길 끝 오래 산 나무들이 거느린 첩첩의 물가

 그처럼 깊은 풍경을 본 적 없어 훌쩍이며 울고 말았네

 생시의 딸이자 생시에도 없는 여동생이 방학이라며 신나게 달려내려와 오른쪽 길로 달려가고

 달려내려오던 여선생님이 들썩이는 내 어깨를 쓰다듬고는 다시 오른쪽 길로 달려가네

 왼쪽 비탈 아래 눈 쌓인 등성이로 노을이 드네

 털목도리를 두른 낯익은 사람들이 봄소풍을 오르네

 꿈에도 그처럼 부시게 저무는 풍경을 본 적이 없어

 팔짝팔짝 뛰며 울고 있는 나를

 괜찮아 엄마 괜찮아 새우깡 냄새를 풍기는 한 손이 꿈밖에서 다독이네

 엿보아서는 안될 꿈을 엿본 일곱살 적 꿈만 같아

 어쩌면 나는 곧 죽을 것도 같았네

 

 생각해보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제 몸 밖에 빗장을 걸어잠근

 내 처음 아이

 늘 늑골 속에서 울고 있다

 사랑이 시작될 때도 그렇게 울었으리라

 제 늑골에 비탈길을 내는 눈물에 의지해

 제 늑골을 다독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괜찮아 아가 다 괜찮아 언제나

 짜디짠 서말 닷되의 진땀을 흘리며 울고 있다

 

 잘 익은 시에서 풀썩이는 숨소리가 들리는 이유

 모든 숨에 소금기가 배어나는 이유

 

 

 

                   시집『와락』창비2008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대 국문과 同대학원 졸업.

                     1988년『문학사상』신인상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삼천갑자 복사빛>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