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고구마 / 김미령
폴래폴래
2009. 7. 12. 17:11
사진:네이버포토
고구마
- 김미령
김이 설설 나는 노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무니
이빨 자욱 가지런히 길을 낸다
내 앞니가 베어낸 요철마다 문득 자욱한 슬픔이 내려앉고
톱밥먼지 날리는 먼 나라의 창고에 대패질 소리 들린다
끌로 파낸 연한 목질의 무늬처럼
무르게 된 산과 계곡들
이리저리 금방 산세와 지형을 바꾸는 바람 같은 쇠날
편안히 누워 몸을 대주는 살빛 목재
그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두꺼운 손바닥이 보인다
둥글둥글한 한 덩이 고구마의 그 노란 목리(木理)를 따라가다 보면
내 죄 없는 앞니를 그 몸에 모두 받아내던
아버지의 울퉁불퉁한 밤과 낮이 가만히 내 손 위에 놓인다
오늘같이 무릇무릇 구름 낀 날엔
연장주머니처럼 불룩하게 이불 안에 담겨
얌전히 고구마를 벗기곤 한다
『시에』2008년 봄호
- 1975년 부산 출생. 부경대 국문과 졸업.
2005년《서울신문》신춘문예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