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돌아가셨다 2 / 박라연
사진:네이버포토
우주 돌아가셨다 2
- 박라연
상처와 술을 이름만큼 사랑하셨지요
유월 공달 무사히 건너뛰시려고
오래된 술독 오래된 상처의 입맛만으로
무더위와 허기를 무려 스무 날째 버티시더니
암 말기의 고통들을 겨드랑이에 모아 수십 송이의
치자꽃으로 바꾸신 후에야
안심한 듯 칠월 초사흘 아침에 밥 점(點)을 찍으셨지요
그곳이 도대체 어디이기에 술과 상처보다 밥을
더 귀히 여기시는지 여쭙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제각각인 우리 가족들
아버지 밥에 대해 늘 갑론을박하고 큰오빠
혼자서 치자꽃 피워올립니다
시집『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2006
自序
술은
고독을 빨아들이는 혀다
나의 부친께서는
내 몫의 술까지 마시고 떠나셨다
술 대신
삼라만상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사랑을
입술에 적시며 여기까지는 왔다
수렁에 빠진 나에게
필요하다면 붙잡으라고 손 내밀던
차주일 시인에게
랜덤 중앙의 식구들에게
사는 일이 늘 미안한 사람들에게
내 목마름의 향기를 바친다
2006년 여름
박라연
- 전남 보성 출생. 한국방통대 국문과 수원대 대학원 국문과.
원광대 국문학 박사.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