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
박은형
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 주는 흑백 한 문장
다발로 묶어 연두를 실어 갈 당나귀 어디 없을까요
당신과 나의 담장에도 뭉개질 만큼만 놓아기르기로 해요
연두가 그저 몇 걸음의 눈 배웅에 관여하는 거라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꼭 살겠습니다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시집<흑백 한 문장> 2020.파란
경남 창원 출생. 2013년 애지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