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연두

폴래폴래 2020. 11. 19. 10:58

  연두

 

                            박은형

 

 

 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 주는 흑백 한 문장

 

 다발로 묶어 연두를 실어 갈 당나귀 어디 없을까요

 당신과 나의 담장에도 뭉개질 만큼만 놓아기르기로 해요

 

 연두가 그저 몇 걸음의 눈 배웅에 관여하는 거라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꼭 살겠습니다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시집<흑백 한 문장> 2020.파란

 

 

 경남 창원 출생. 2013년 애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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