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나는 민들레를 아리랑의 정서라고 부른다 / 이지호

폴래폴래 2018. 5. 21. 09:51





       나는 민들레를 아리랑의 정서라고 부른다



                                            이지호


 하얀 민들레꽃이 피었다

 부서지거나 없어진 표지판을 대신하듯 경계에 핀 꽃

 꽃은 견디는 중이다


 민들레의 위치는 심장에 있다

 끌어당기는 마음과 내어주는 마음

 잎이 뭉개지고 생채기가 생겨도

 그렇게 그렇게 꽃줄기를 올리는 힘


 나는 민들레를 아득함이라고 부른다


 내 세상이었던 너를 잃었다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더는 쓰지 않으련다

 많은 시간 원망하고 살았지만

 뼈 속 깊이 새겨진 응어리가 풀려 녹는데

 단 십분도 걸리지 않았다

 숨이 달라지고 숨 때문에 움직임이 달라졌다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맡은 자세로 피어 있는

 여기는 군대가 없다는 듯

 백기를 흔들 듯

 은색 털이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갓털이 위태롭다


 어느 쪽으로 갈까

 미루나무 한 그루 자르는데

 역사적으로 가장 비싼 값을 치른 과거

 민들레는 얼마의 값을 치러야 하나

 갓털이 날아가는 방향은 새로움을 향해 기울 것이다


 공동경비구역을 찾은 그녀가 손편지를 쓴다


 나는 흰민들레를 아리랑의 정서라고 부른다




 『시작』2018년 봄호



 중앙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2011년 창비로 등단.

 시집<말끝에 매달린 심장>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창문 애호가의 방 /권현형  (0) 2018.06.25
그때의 기다림으로 / 권여원  (0) 2018.06.10
푸르른 날 / 서정주  (0) 2018.05.10
봄의 착시 / 금시아  (0) 2018.04.28
케이지 / 유수연  (0) 2018.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