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시인들을 위한 동화 / 한명희

폴래폴래 2011. 4. 4. 11:39

 

 

 

 

 

 시인들을 위한 동화

 

                                        - 한명희

 

 

 

  아주아주 옛날에는 사람들이 몸으로 글을 썼어요 고호가 귀를 잘라 그림을 그린 것처럼요 사마천이란 사람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잘라 글을 썼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사람들은 도구를 이용하게 되었어요 예세닌은 손목의 동맥을 절단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나온 피를 펜에 찍었답니다 그가 쓴 시들은 비린내가 났지요

 

  또 시간이 흘러 글쟁이들은 작업실을 갖게 되었답니다 보들레르는 창녀이자 애인의 방에서 트라클은 여동생이자 애인의 방에서 포는 사촌 여동생이자 아내의 방에서 작업을 했어요 아주 격정적인 작업이었지요

 

  그리고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쟁과 내전, 불신과 검문, 폭력과 폭식, 기상이변에 광주민중항쟁 힌두쿠시 산맥 남쪽에서는 테러가 일어났고 애플은 아이패드를 내놓았지요 두바이유는 자주 백 달러에 육박했어요

 

  요즘은 멀티태스킹이 대세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하면서 글을 써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글을 써요 짜집기를 하면서 모자이크를 하면서 글을 써요 사람들이 점점 만능이 되어갑니다

 

 

 

 

  『시인시각』2011년 봄호

 

 

 

 

  - 대구 출생.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박사.

    1992년『시와시학』등단

    시집<시집 읽기><두 번 쓸쓸한 전화><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

    2003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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