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종이 울리고
- 최영미
잠에서 깨어난 엘리베이터가
검정 구두들을 실어나른다.
금요일의 죄를 일요일에 속죄하려는,
피곤한 발들이
거대한 유리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시멘트 벽에 강림(降臨)한 거룩한 얼굴은
낡기도 전에 새로 칠해지고,
늙은 백인이 부러뜨린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까만 눈동자
할머니를 따라 주기도문을 외는 장밋빛 입술도
언젠가는 문밖으로 뛰쳐나가겠지
길 건너, 빌딩의 장막에 가려진 호숫가에는
신을 믿지 않는 부자들이
새벽부터 골프채를 휘두르고,
시끄러운 아침의 나라에 싫증난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려 짐을 싸는데,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내 방을 떠나지 않는다.
미친 대한민국은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나를 천국으로 데려다줄 그,
잡지의 얼굴처럼 쉽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림을 내 것으로 붙들지 못해 탄식하면서
<도착하지 않은 삶>2009 문학동네.
-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홍익대 미술사학과
1992년 『창비』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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