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햇발국수나 말아볼까 / 고영

폴래폴래 2009. 6. 5. 21:57

 

 

 

                                                              사진:네이버포토 

 

 

 

 햇발국수나 말아볼까    

 

                                                         - 고영

 

 

 가늘고 고운 햇발이 내린다

 햇발만 보면 자꾸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종일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꼴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천둥벌거숭이 자식이라 흉을 볼 테지만

 흥! 뭐 어때,

 온몸에 햇발을 쬐며 누워 있다가

 햇발 고운 가락을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말아가다 보면

 햇발이 국숫발 같다는 느낌,

 일 년 내내 해만 뜨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면

 그럼 모든 것이 타 죽어 죽도 밥도 먹지 못할 거라고

 지나가는 참새들은 조잘거렸지만

 흥! 뭐 어때,

 장터에 나간 엄마의 언 볼도 말랑말랑

 눈 덮인 아버지 무덤도 말랑말랑

 감옥 간 큰형의 성질머리도 말랑말랑

 내 잠지도 말랑말랑

 그렇게 다들 모여 햇발국수 한 그릇씩 먹을 수만 있다면

 눈밭에라도 나가

 겨울이 되면 더 귀해지는 햇발국수를

 손가락 마디마디 말아

 온 세상 슬픔들에게 나눠줄 수만 있다면

 반짝이는 눈물도 말랑말랑

 시린 꿈도 말랑말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2009 문학세계사.

 

 

 

                  - 1966년 경기 안양, 부산에서 성장.

                     2003년 '현대시' 등단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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