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햇발국수나 말아볼까
- 고영
가늘고 고운 햇발이 내린다
햇발만 보면 자꾸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종일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꼴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천둥벌거숭이 자식이라 흉을 볼 테지만
흥! 뭐 어때,
온몸에 햇발을 쬐며 누워 있다가
햇발 고운 가락을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말아가다 보면
햇발이 국숫발 같다는 느낌,
일 년 내내 해만 뜨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면
그럼 모든 것이 타 죽어 죽도 밥도 먹지 못할 거라고
지나가는 참새들은 조잘거렸지만
흥! 뭐 어때,
장터에 나간 엄마의 언 볼도 말랑말랑
눈 덮인 아버지 무덤도 말랑말랑
감옥 간 큰형의 성질머리도 말랑말랑
내 잠지도 말랑말랑
그렇게 다들 모여 햇발국수 한 그릇씩 먹을 수만 있다면
눈밭에라도 나가
겨울이 되면 더 귀해지는 햇발국수를
손가락 마디마디 말아
온 세상 슬픔들에게 나눠줄 수만 있다면
반짝이는 눈물도 말랑말랑
시린 꿈도 말랑말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2009 문학세계사.
- 1966년 경기 안양, 부산에서 성장.
2003년 '현대시' 등단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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