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대나무 / 최서림

폴래폴래 2009. 5. 30. 21:05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대나무

                                   - 최서림

 

 

 겨울날 삭풍에 대나무가 더욱 크게 휠 수 있는 것은

 속에다 잔뜩 감추고 있는 구멍때문이다

 남보다 더 곡진(曲盡)하게 더 음산하게 울 수 있는 것도

 칸칸이 방방이 더 시퍼런 불 켜들고 있는 구멍 때문이다

 

 구멍은 사물이 놀 수 있는 자리이다

 구멍이 없는 사물들은 자유가 없다

 대나무들은 각자 자기의 구멍을 차지하고서

 스스로 놀고 있다

 구멍에서 구멍으로 이어지는 큰 구멍 속에서

 대나무들은 서로 얽히면서 부대끼면서도

 각자 바로 놀 줄 안다

 

 우주도 큰 구멍이면서

 다른 구멍 안에 둘러 싸여있다

 어떤 소리는 우주 밖으로까지 울려나가기도 하는데

 대금이나 피리를 불려면

 하늘과 땅 사이를 울리고 꽉 메우는 소리를 내지르려면,

 우리의 늑골을 흔들고서 참말로

 우리의 혼을 우주 밖으로 까지 끌어올리는 소리를 내려면

 

 대나무 구멍 안에 감추어진 소리를 읽어야한다

 겨울밤 미친년모냥 흔들리며 울어댄 소리,

 가을날 풀벌레보다 더 외로운 빈 구멍의 소리, 침묵의 소리

 남국의 햇살 기름이 자르르 빛나는 영원의 소리.

 대나무 통 안으로 계시처럼 스며들어가 있는

 태초의 소리부터 부지런히 먹어봐야 한다

 

 

 

 

 

                   -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국문과 同 대학원 졸업

                      1993년 '현대시' 등단

                      서울 산업대 문창과 교수.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의 망루 / 정끝별  (0) 2009.05.31
Personal Computer / 최영미  (0) 2009.05.31
팬티 / 임보  (0) 2009.05.30
오월 / 송찬호  (0) 2009.05.28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 김경주  (0) 2009.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