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네이버포토갤러리
탑 / 박준
삼남매의 손을 탄 종이인형 같네
목이 곧잘 앞으로 꺾어지는 당신
주름은 무게와 무게가 서로 얽혔던 흔적이라
적어두고 나는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네
보조바퀴처럼 당신을 따라다니네
양은냄비 뚜껑에 배추김치가 올라앉는 무게
밥상의 무게를 밀어두고 무게를
뒤집으면 팔월, 무주공산에
뒤집으면 삼월, 홍싸리가 피네
오늘 저녁 즈음엔 귀한 무게를 만난다는 괘를 싣고 길가로 나오네
무게의 내력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내 생에서 절망이 아닌 것들을 골라내는 일
당신은 지금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만 주웠으므로
시간당 한 번 꼴로 나는 노트에 적어 두었네
'날지 못하는 새는 있어도 울지 못하는 새는 없다'
길가 담벼락, 온몸의 무게를 들어
버려진 쥬스병을 당신이 꺼낼 때 나는 은유를 꺼내네
황달 앓는 막내들 같아, 수레에 잔뜩 실린 골판 골판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골목을 돌다
갑자기 그 수레를 만나면 누구라도 '탑' 하고 걸음을 멈출 수 있었네
그 탑을 조심스럽게 피해 돌다 보면
사면으로 쌓인 골판과 골판 '사이'에
오늘의 결정結晶 같은 쥬스병이 맺혀 있었는데
수레를 쫓으며 속기한 내 노트에는 '사이'가 '사리'라고 오기되기도 했네
언덕을 내려가는 당신의 몸이 뒤로 젖혀지네
무게를 잊고 처음 바람을 읽는 어린 새 같아
어둠보다 높이 오른 탑의 꽁지가 막 들썩이기 시작했네
- 등단작/ 실천문학,2008
- 1983년 서울 출생.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창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재학.2008년 실천문학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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