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검은 나무 / 장석원

폴래폴래 2009. 3. 26. 22:03

 

 

 

 

 

 

 

 

              검은 나무        / 장석원 

 

 

 

 나는 방금 전에 검은 나무를 지나쳤다

 그는 견고한 기둥이 아니다

 어둠에 먹힌 그가 꽃을 밀어낸다

 꽃잎 꽃잎 꽃잎 터져 나오는 꽃잎

 어둠을 빨아 마신 검은 나무의 검은 언어

 나에겐 검은 나무를 기술할 검은 혀가 필요하다

 

 어둠 속의 나무는 따스하지만 또한 나를 찌른다

 검은 나무의 폭력에 몸이 열린다

 그가 전해주는 검은 사랑을 나는

 갉아먹는 환한 꽃으로도

 베어내는 칼날로도

 부정할 수 없다 내게는 힘이 없다

 

 왜 검은 나무 앞에서 나의 소음을 듣고 있는가

 

 검은 나무가 나를 설명한다

 거부된 자이기에 돌아오지 않을 나를 기술하는 검은 나무의 목소리가, 희미한 체취가

 빠르게 궤멸되었던 두 감각이

 교차되면서 교란되면서

 나를 실체라고 주장한다

 나는 속기로 작정한다

 

 검은 나무가 걸어온다

 나는 어둠이 가득 찬 주머니

 그가 내게 손을 대자 나는 주르르 쏟아진다

 어둠의 성채로 흘러드는 길이 된다

 

 그물을 펼치고 그의 모든 이미지를 포획하려 한다 그리고

 종말을 향해 첫걸음을 떼었다

 검은 공포가 서 있다

 

 

 

             

           - 1969년 충북 청주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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