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후기後記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서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접목接木 / 복효근
늘그막의 두 내외가
손을 잡고 걷는다
손이 맞닿은 자리, 실은
어느 한쪽은 뿌리를 잘라낸
다른 한쪽은 뿌리 윗부분을 잘라낸
두 상처가 맞닿은 곳일지라도 몰라
혹은 예리한 칼날이 내고 간 자상에
또 어느 칼날에 도리워진 살점이 옮겨와
서로의 눈이 되었을지 몰라
더듬더듬 그 불구의 생을 부축하다보니 예까지 왔을 게다
이제는 이녁의 가지 끝에 꽃이 피면
제 뿌리까지 환해지는,
제 발가락이 아플 뿐인데
이녁이 몸살을 앓는,
어디까지가 고욤나무고
어디까지가 수수감나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접목
대신 살아주는 생이어서
비로소 온전히 일생이 되는
명작 / 복효근
지리산 자락에
백로 한 마리 가로질러 날아간다
산이 푸르니
새 더욱 희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저 필생의 한 획
누구의 그림인가, 시인가
내가 그만 낙관을 눌러버리고도 싶었으나
낙관이 없어서, 서명이 없어서
더욱 명작인,
*두보의 絶句 가운데 한 문장 '江碧鳥逾碧' 에서 빌려옴.
시집<마늘촛불,2009.애지>
*시인의 말*
숫눈 위를 고양이가 지나갔나보다.
그 자리에 얼음이 얼었다.
고스란히 꽃이다.
세상에, 발자국이 꽃이라니!
서늘하고 투명하다.
내 시와 삶은 무엇을 닮아있을 건가.
조심스레 여섯 번째 발자국을 내려놓는다.
2009 새봄
지리산 아래 범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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