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김경주

폴래폴래 2009. 3. 21. 14:12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 김경주 

 

 

 

 벽 틈으로 들어간 달팽이가 사흘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벽에서 일어나는 붉은 비린내를

 빛을 외로워한 그 달팽이가

 안에서 혀를 깨물고 있을 것 같다고 여길 때

 물기의 층을 거쳐 태어난 목젖이 자기 음악을 알아보고

 집 안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을 때

 

 옥상의 노란 정화조 탱크 속에

 지친 새 한 마리 눈을 감고 떠 있을 때,

 구슬처럼 행불이 된 연인을 찾아

 투명한 뼈를 가진 벌레들을 가방에 모으며 여행할 때

 남몰래 아주 긴 피로 별자리를 물들이고

 너무나 많은 달걀 안의 수도를 알고 있지만

 방에 귀만 넣어두고 자야 할 때

 

 오래된 미라의 귓속에 가만히 내 귀를 대어 보았을 때

 

 내 귓속의 죽을 당신에게 다 흘려준다고 생각했을 때

 오래 비운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헐리고 있을 때

 구멍 속에서 고운 가루가 된 달팽이를 발견하고

 목으로 인어들이 우루루 밀려올 때

 

 유리에 금이 오른다

 번지는 일로만 여러 번

 당신의 손가락을 물고 잠들고 싶었는데

 

 그대를 더 연하게 만드는 여행들

 

 

 

               - 2003년 대한매일(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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